1980년대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기'로 불리는 희대의 어음 사기 사건의 주인공 장영자(81)가 또다시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이번이 다섯 번째 구속으로, 출소한 지 3년 만에 다시 철창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청주지방법원 형사항소3부(태지영 부장판사)는 2025년 1월 22일, 위조유가증권행사 혐의로 기소된 장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습니다. 이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원심을 뒤집은 결과입니다.
최근 사기 사건의 개요
장영자는 2017년 7월 10일,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농산물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154억 2천만 원 상당의 위조 수표를 선급금 명목으로 건넨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장씨가 "위조 수표인 줄 몰랐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장씨가 이번 사건으로 이익을 취했다고 판단하였으며, 과거 그녀의 범행 수법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점을 들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특히 재판부는 계약 체결 시 장씨가 받은 3천만 원의 이행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점과 과거 사건과 위조수표의 액면금액 및 수표번호가 일치하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피고인은 과거 여러 차례 사기로 인한 처벌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뢰를 저버리는 범행을 반복했다"
재판부는 금융거래의 안전성을 위협하고 일반 사회의 신뢰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장영자의 과거 사기 행각
장영자의 첫 번째 대규모 사기 사건은 1982년에 발생했습니다. 당시 그녀와 남편 이철희는 7,000억 원 규모의 어음 사기 행각을 벌여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사건은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기'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그 규모와 파급력이 엄청났습니다.
장영자와 이철희 부부는 주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제공하는 대신 대여액의 2~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냈습니다. 이렇게 받은 어음을 할인하여 현금화하고, 이를 다시 다른 회사에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자금을 불렸습니다.
이 사건의 결과로 당시 철강업계 2위였던 일신제강과 건설업계 8위였던 공영토건이 부도났으며, 30여 명이 구속되는 등 사회적 파장이 컸습니다. 장영자는 당시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10년 복역 후 1992년 가석방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출소 후에도 장영자의 사기 행각은 계속되었습니다. 1994년에는 140억 원대의 차용 사기 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어 4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후에도 2000년 220억 원대의 구권 화폐 사기 사건으로 또다시 구속되었습니다.
"장영자의 사기 행각은 마치 끝나지 않는 연쇄극과 같았다. 출소할 때마다 사회는 그녀의 갱생을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번번이 무너졌다."
가장 최근에는 2018년, 남편 고(故) 이철희 씨 명의의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기증하려는 데 비용이 필요하다는 등의 명목으로 피해자들을 속여 약 6억 원을 편취한 혐의로 구속되어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되었습니다.
장영자 사건의 사회적 영향
장영자 사건은 단순한 금융 사기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금융실명제 도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결과적으로 1993년 김영삼 정부 시기에 금융실명제가 전격 시행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은 당시 정치권력과의 유착 의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장영자의 형부가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녀의 남편 이철희가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이었다는 점 등이 사건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습니다.
이 사건은 5공화국 시기 권력형 비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며, 당시 정권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5공 실세들이 물러나고 노태우 세력이 중앙 권력의 실세로 부상하는 등 정치적 지형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장영자 사건은 또한 한국 사회의 투기 열풍과 불법적인 금융 거래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건전한 금융 질서 확립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고, 금융 감독 체계를 강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장영자 사건이 남긴 교훈
장영자의 반복되는 사기 행각은 한국 사회에 여러 가지 교훈을 남겼습니다.
첫째, 금융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한 대규모 사기의 위험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금융 거래의 투명성 확보와 감독 강화의 필요성을 일깨웠습니다.
둘째, 권력과 금융 비리의 유착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습니다. 이는 정경유착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권력의 감시와 견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셋째, 재범 방지와 교정 시스템의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장영자의 반복되는 범행은 현행 교정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냈으며, 출소자의 사회 적응과 재범 방지를 위한 보다 효과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했습니다.
"장영자 사건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 거울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금융 시스템의 허점, 권력의 남용, 그리고 사회 정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언론의 역할과 중요성을 재확인시켰습니다.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과 보도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장영자의 최근 구속은 과거의 교훈이 아직 충분히 학습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금융 사기와 같은 범죄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며,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감시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장영자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한 장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는 더욱 투명하고 공정한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고,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시스템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